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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화요일

동계 올림픽

아침에 부스스 밥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테이블에 놓인 LA타임즈를 읽었는데 동계 올림픽 기간인지라 신문 내용들이 전부 스포츠 관련 기사 밖에 없었다. 그 다지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피는 못 속인다고 한국 관련 기사가 어디 없나 하고 뒤져 봤는데 떡 하니 오노 얼굴만 보였다.

어디 가나 자국 응원하는 국민 밖에 없겠지만 이런 국가대항전에서는 다들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긴하다. 그까이 스포츠가 뭐라고 밥이 나오나 국이나오나...ㅡㅡ; 벤쿠버 일면에 메달 집게 순위가 있는데 눈을 씻고 봐도 한국이 안보였다. 울 나라 4등이라더만 어디 간거야?  자세히 보니 전체 메달 집계로 국가 순위를 달아 놓아서 5위권 밖엔 안나와 있는것 같았다.

숏트랙에서 아쉽게 은메달을 딴 이호석 군이 생각이 났다. 실력으로 이정수군에게서 밀렸겠지만 혹여나 앞경기에서 실책한 자신에 대한 위축감 같은 것은 없었던 걸까?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상당한 실수를 한것 임에 틀림없다. 개콘의 박성광이 말했듯이 한국은 역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니까. 메달의 가치를 어떻게 매겨야 할까? 만들때 드는 비용에 따라? 은메달 2개면 금메달이랑 같은건가? 아니면 여기처럼 3명 모두에게 같은 가치를 부여 해도 되는 건가?

물론 같은 가치는 아니겠지만 그 만큼 2등 3등에게도 가치를 부여 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쪽수 많은 나라들이 자기 나라 등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한국에서는 이등은 역시 아무런 가치를 부여 받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성시백 선수야...은메달 놓친거 너무 아쉬워 하지말아라...최소한 그 날의 사고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2등이 었을 뻔 했던 너를 기억해 줄거다..젠장..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코업 첫날

그제 저녁에 랙스에 내려서 첫날은 자정이 넘었는데 픽업 나와준 고마운 동기 동생 녀석이 따듯한 환영 덕분에 집에서 3시까지 맥주를 마시면서 16시간의 긴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오히려 맘에 한구석에 크게 자리 잡은 부담이 약간은 덜해지는 기분이 들어 한결 다행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는 오피스에 들르기 전에 코업에 갔다.

아루샤가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애매모호한 말만 남긴 터라 약간은 걱정이 앞서 갔는데 다행히 빈 자리가 있어서 체크인을 할수 있었다. 이리저리 리저브 피, 500불 내고 멤버쉽 150불 내고 디파짓 천불 내고 또 중간에 들어왔다고 200불 내고...허거덩 코펜하겐에서 환전한 돈의 절반 이상을 하루에 다 쏟아 부어야 했다. 이런 젠장...ㅠㅠ 그래도 오고 갈데 없는 나를 받아준 매니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또 한가지는 이번주에 들어와서 시프트를 화요일로 잡았더니..주말에는 이미 꽉 차있었고..그럼 이번주는 벌금을 내라고 했다. 아니면 금요일로 바꾸던지...그래서 이리저리 골치 아프니 그냥 내일 부터 일하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1시까지...메인테넌스 오피스로 고고싱~

시차가 극복이 안되어서 인지 저녁 8시에서 11시 정도면 거의 정신을 못차리는 지라 담날 일도 있고 해서 일찍 잤는데 결국 새벽에는 잠이 안와서 뒤척였다는...울 방 룸메는 2명있는데 하나는 네덜란드에서 오체트 맞나? 거기서 온 제롬이고 걔네들 발음으로는 요옴이겠지..그리고 하나는 미국애인데 버클리에서 전공을 바꿔서 보건정책 전공하는 둘다 원생들인데 깔끔하고 다들 진지한 스타일이다..원생이니 술쳐묵하고 빌빌 거릴 나이는 아닌듯해서 다행이었다. 그 중 제롬은 나랑 같은 날 시프트가 있어서 둘이서 같이 아침 먹고 출근했다.

식당보다 메인테넌스 선택한건 그냥 한자리에 계속 잇는것도 싫고 음식 냄새도 별로라서 좀 더럽더라도 움직이면서 얘기하는 직업이 낫겠다 싶어 선택했는데...끝나고 허리를 부여 잡고 약간 후회도 되었다. 알프가 자기 시프트에 들어오지 그랬냐고 했을때는 더 고민되기도 했다. 그래도 수퍼바이저인 앤드류도 착하고 애들도 ..제롬도 있고 해서 당분간은 그냥 이 직업으로 갈까 생각 중이다. 근데 창문 닦는건 정말 힘들었다. 예전에 회사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생각 없이 보고 할만한가 했는데...역시 사람이란건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거다. 아마 아주머니들도 유리로 된 건물에서 일하시는게 고역이실듯...어깨랑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ㅠㅠ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설날

어제는 구정이었단다...
그 닥 정신이 없어서 신경도 안쓰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이 ...이라고 해봤자 두명이지만..ㅡㅡ;
떡국 먹자고 했다. 이번주 수요일 비행이라 주말즈음에 환송회는 아니더라도 그냥 맥주나 한잔 마시며 얘기나 할까 했는데 때마침 떡국을 끓였다니 부랴부랴 기숙사로 달려 갔다.

가면서 마트에 들러서 간식 거리라도 살까 해서 아이스크림이랑 쵸컬릿 안에 머시멜롱이 들어 있는 발렌타인 초컬릿 한상자를 사서 갔다. 마트랑 기숙사가 반대 방향이라 좀 걸어야 하긴 하지만 빈손으로 가기도 좀 그래서 늦었지만 빨리 걸어갔다. 날이 유난히 좋아서 그 볕이 든다는 일주일 중에 하루를 충분히 쓸 정도로 아침부터 화창 그 자체였다. 덕분에 평소엔 약간 추운듯한 내 점퍼가 유난히 더워서 앞을 열어 젖혀야 할 정도였다.

도착햇을 땐 이미 다 끓여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떡을 독일에서 공수해 온 것이라고 했다. 독일에 무슨 하나로 마트랑 같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사이트가 있는 듯 했다. 한귀로 듣고 흘려서 ....ㅡㅡ;; 이것 저것 얘기하다보니 7시 가까이 되어서 헤어졌다. 막상 한국에 있으면 그냥 지나가다 만나도 아는 체도 안하는 사람들이지만 역시 밖에 나오면 반갑긴하다. 물론 엘에는 아니지만...괜히 반가운척 하다 사기군 취급 당할지도 모르니..ㅡㅡ;; 학부 학생들이 부럽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많은 것들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

설인데 집에다 전화도 안해서 찜짐하기는 하나 ..흠...
요즘은 돌아서면 추석이고 자고나면 설인건 역시나 나이 탓인가?? 시간이 왜 이케 빨리가는지..
내 기억에도 작년에 떡국을 먹은것 같다. 은규랑...
사실 작년엔 설이 아닌데도 떡국이랑 만두국 엄청 끓여 먹긴 했다. 인스턴트 요리랑 마찬가지니...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나이트 클럽

금요일 중국친구들 축구 모임에 다녀와서 키친에서 기타 히어로를 장장 4시간을 하고 있는 애들과 맥주 한잔을 했다. 솔직히 기타 히어로는 별로 재미가 없다. 난 스포츠 게임이 더 좋은데... 어쨌든 베이스랑 드럼이랑 돌아가면서 한번씩 했더니 시간이 어언 열시가 넘었다. 사다 놓은 맥주를 마시면서 마리오 카트를 몇게임 더했는데 요나스가 시내 나이트에 가자고 했다. 버스타고 또 나가기도 귀찮고 시간은 거의 열한시가 다되어가는데 또 차 끊기면 택시 타야되니 부담되고... 애들이 크랙한 위 게임들이나 하면서 놀다가 들어가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간혹 외국 게임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대해 불법 소프트웨어 유통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것 같다. 요즘은 온라인 게임이 대세이니 머 패키지를 크랙해서 쓰는 게이머들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한동안 ps 사용자들이나 엑박 사용자들이 게임기를 크랙해서 복사 게임을 하드에 저장해서 쓰던 때가 있긴 햇는데 그건 굳이 한국만의 일은 아닌것 같다. 요나스도 위에다 USB 하드를 연결해서 인터넷 해적 사이트에서 다운 받은 게임들이 수십개가 넘게 저장 되어 있어서 너네도 이짓 하냐고 물었더니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니겠냐고...ㅡㅡ;; 버젓이 구워서 상점에서 파는 미친 중국 상인들도 있는데 집에서 혼자 즐기는 것 즘이야 양반  축이라고..

어쨌든 시내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나왔다가 텀이 길어서 학생 회관 로비에서 남은 맥주를 비우고 시내로 갔다. 알고 봤더니 요나스가 내가 살던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황당했다. 몇달 동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도 몰랐다니...근처에 살고 있다고는 얘기는 들었는데 같은 건물이니 황당했다. 아침에 늦게 가고 늦게 오는 나랑은 정 반대로 움직이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니로서니...흠...

그 시간에도 클럽 입구에는 시큐리티 직원들이 입구 통제를 하고 있엇다. 그 앞에서 들어가기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당췌 이거 언제 한잔 마시고 다시 집에 가나 걱정하는데 안드레아스...이번에 졸업한 석사 학생하나가 자기네 집에서 자도 된다고 해서 약간 안심은 했다. 클럽 들어가니 쟈켓 맡기는데 돈달라고 그러지..맥주한잔에 80크로나...우리돈으로 만3천원 정도되나...한번은 내가 샀는데 3잔에 35불 정도 준것 같다. 것도 400정도 되나? 여튼 엄청 비싼거지... 물론 울 나라처럼 들어가면 테이블 부터 세팅하는데 돈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자리 값이 없으니 싼지는 모르겠지만 나이트 치고는 거창하기 보다는 클럽 분위기 였다. 아래 윗층으로 무대가 있고 연기는 엄청 뿌려 대서 목이 아플 지경었지만...

물론 시끄럽긴 했지만 분위기는 뭐 차분하다고나 할까? 춤추는 사람들은 춤추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얘기하고 약간의 광란의 분위기를 기대한 나로서는 좀 실망...안드레아스 얘기로는 나이별로 노는 곳이 다르다고 하는데 이곳은 좀 나이가 잇는 양반들이 와서 그렇다고 했다. 외국애들 나이도  이제 제법 잘 맞춰서 내가 보기에도 좀 올드하신분들이 고객인것 같았다. 한국에 부킹 시스템에 대해서 얘기해 줬더니 좋은 시스템이라고 부러워 했다. 사실 나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데...주어 들은 얘기로만...ㅡㅡ;;  우리 요나스는 오늘도 여친 콜을 받잡고 일찍 집으로 고고싱 하시고 안드레아스랑 스웨덴의 2차대전에 취한 태도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갔다.

새벽 3시에 난 버스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탈줄은 모랐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다. 아마도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본 러시아워가 아닌가 싶다. 금요일..아니 토요일 새벽이 이 곳의 러시아워임에 틀림없다..ㅡㅡ;;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입양

오늘은 금요일 티 타임이 있는 날이다.
다음 주에 내가 떠난다고 하자 한국 여자아이를 입양 한 교수님 한분이 새해 맞이 카드를 한장 쓰고 싶다고 나에게 번역을 부탁하셨다. 원래 아이의 엄마는 없고 친권이 할머니에게 있는데 영어를 못하셔서 한글로 써야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입양 기관에 부탁을 하면 되지만 번거롭고해서 직접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사실 같은 국민의 입장으로 부끄러운 부분을 물어보기가 쉽진 않다. 너네는 너네 나라 사정도 모르냐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 듯 해서 이다. 간혹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스웨디시를 잘 하는 한국 청년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2세이거나 혹은 입양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스웨덴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겠지만 무엇보다 다른 자식 더우기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다는 것은 부모로나 자식으로나 상당한 위험이 있는 부분이다. 모 프랑스인이 한국 아동 입양을 한국 내에 후원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모국에서 자라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는가? 하는 당연한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긴 하지만 그것이 외국인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사람들 개개인은 인정이 많고 친절하지만 전체 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소수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냉담하다. 그래서 모두들 주류에 들지 못할까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어느 사회에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그것들을 부인하고 숨기려고 한다. 늘 보기 좋은 것들로 기사를 채우는 신문들이나 성과에만 집착하는 정부만 있을 뿐이다. 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경제국이라 외치고 다니면서 가난한 나라에 원조에는 짜다. 한국에도 아직 밥 못먹는 사람많다는 이유로...하지만 경제난을 핑계로 정작 국내 밥 못먹는 아이들을 위한 급식비부터 먼저 절감하는게 현 주소이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느낀 것은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람들 생활은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밥을 못먹거나 집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한국 처럼 매일 외식하고 술을 퍼 부으며 사는 사람은 없다. 주말에 바라도 가면 술값이 비싸서 몇잔 마시면 부담된다. 물론 음식값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비가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소득에 많은 부분을 직간접세로 내다 보니 그런것 같다. 하지만 이 나라는 매해 많은 돈을 아프리카 원조에 쓰고 있다. 빈민국들은 선진국들의 무차별한 자연 개발로 인한 자연 재해를 겪고 있으며 자본에 의해 인권을 유린 당하고 있다. 바에서 한잔 마시는 맥주 한병이면 어린 아이 한명이 보름을 먹고 살수 있는 식량을 살수도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큰 생각의 흐름은 사람은 같다는 것이다. 약간의 이 커뮤니즘적인 생각이 우리나라의 우익 세력을 자극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곳에선 우리나라 정치인 같은 생각을 했다가는 몰매맞기 쉽다. 이곳 지방 시장이 지역 사회 기업가에게 개발 제한 구역에 건설 허가를 내주었다가 이슈가 된 일이 있다. 문제는 불법적인 인허가가 아니라 그 시장 발언에 있는 데, 그가 사회에 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이 생각에 이곳에서는 너무나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안하는 사람이든 인권은 같다. 그들에게는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나 부모가 없이 자라는 한국의 어린아이나 자기 자식과 같은 아이들이다.

부모가 도장을 찍으면 바로 다음날이면 픽업해서 데려 올수 있다는 교수 말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과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외국인들이 삼성, 엘지를 외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때 그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

2010년 2월 9일 화요일

주말 시골 여행

근교 사는 한국분이 주말 동안 같이 지내자고 초대를 하셨다.
하루 정도는 오슬로를 다녀 올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하는 일도 잘 안풀리고 일정도 빡빡해서 접어야 겠다 ...라고 맘 먹고 있었는데 목요일 저녁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주말에 스키 타러 가려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으셨다. 음...그럼 이곳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별로 없는데..사실 사무실 추억 외에는...ㅡㅡ;; 이 기회에 추억 거리나 하나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따라 나서기로 했다.

금요일 티 타임 후에 가방에 이리저리 옷 가지를 챙겨 넣고는 로비에서 아주머니를 기다렸다. 스웨덴 분이랑 결혼 하셔서 오신지 이십년 가까이 되셨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 교수네 아들 녀석 선생님인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해서 소개를 시켜 주었다. 연말에 같이 지냈으면 했는데 한국 다녀 오시느라 못했던게 내내 맘에 걸리셨는지 연락을 하셨다. 일단 차를 타고 근처 지내시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시골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선박 관련 일을 하셔서 한국에도 자주 오셨는데 그러다 만나셨다고 한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시골 생활을 하신다고 한다. 아이들이 엄마를 조금 닮기는 해도 한국말을 하지는 못했다. 큰 딸만 어렸을때 한국에 살아서 인지 들어서 이해는 하는데 말은 하지는 못했다. 해가 일찍 지니 서둘러서 출발했는데도 깜깜한 저녁? 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이미 부엌에는 아저씨가 저녁 준비를 다 해 놓고 기다리시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서자 넉넉한 웃음으로 반겨 주셨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 처럼 생겼다...ㅡㅡ;;

저녁으로 무스랑 양고기를 먹었다 .무스는 이곳에 사는 사슴 종류인데 맛이 텁텁한게 특징이다. 이 얘기 저얘기하면서 와인을 몇잔 마시고는 포켓볼을 쳤다. 지내면 지낼수록 놀라운 곳인데...집안에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집 두채를 연결하여 하나로 쓰는데 새로 지은 집은 아저씨가 집접 지었다고 당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정말 놀라웠다..사람이 어떻게 혼자서 집을 짓는다냐? ㅡㅡ;; 집 안에는 개인용 바와 옆에 포켓 당구대가 있었다. 우리는 편을 나눠서 포켓볼을 몇 게임 치고는 저녁 늦게야 잠이 들었다.

얇은 속옷만 주로 입고 자는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두꺼운 내의를 입고 자는 것이 그다지 편안하지는 않다. 이곳에서 난방은 전적으로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도시는 가스나 기름으로 난방하기도 하겠지만 기름 값이 비싼 반면 전기료는 싸다고 한다. 그래도 한계가 있으니 나무로 난방을 했다. 주변에 나무는 엄청 많으니까.. 집 주변에 숲이 아저씨네 것이라 했다. 아주머니는 첨에 아저씨가 호수가 숲이 자기 땅이라고 해서 엄청 부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과 달리 숲의 나무를 벌목하는데 제재가 없다고 한다..음... 약간의 의외인것이 자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수렵이나 낚시 같은 것들도 제한이 없다고 하니 특이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개개인의 자유에 맡겨도 한국 같이 남획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니 규제하지 않는 것인 지도 모른다. 아저씨가 잡은 곰이랑 여우 같은 것들이 벽에 박제로 있는 것도 특이하고 자랑 삼아 보여주는 뼈 모음은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다..흠...

우리는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노르웨이와 국경에 있는 스키장에 갔다. 주변 군데군데 스키장은 많은데 가장 가까우면서 규모가 되는 곳을 찾다보니 한시간 거리에 그곳에 갔다. 전날 아저씨가 지도로 지역을 보여주었는데 이름들이 어려워서 ....ㅠㅠ 생각외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이곳에는 사람들이 영 없는 줄만 알았는데...아주머니 말로는 평소 보다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 크지 않은 스키장이라고 하는데 한국에 있는 규모 정도 된다.
해가 일찍 지니까 반나절 정도 타고 와도 밤인지라...반나절만 사서 탔다. 물론 난 장비도 대여 했지만 그들은 다 가지고 있었다. 스키는 220 크로나 리프트는 200크로나..다해서 420이니까..우리 돈으로 7만2천...흠..당시는 싸다고 생각했는데 환전해보니 그다지...ㅡㅡ;; 여튼 여기 돈으로 치면 싼편이다..

스키장은 뭐 거기서 거기겠지만 약간 특이한건 규모가 작아서 리프트가 웃기게 생겼다는 것이다. 마치 뚫어 뻥 모양의 손잡이를 다리 사이에 끼고 산으로 질질 끌려 가는 모양이다.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가는거에 비하면 좀 힘들다..사람들이 자주 넘어지기도 한다...ㅋㅋ 또 한가지는 군데 군데 화롯불이 있다..사람들이 거기에서 몸을 녹이거나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서 소세지를 구워먹는다. 우리도 싸온 소세지를 구워서 샌드위치에 커피를 먹었다.

근래 몇해동안 안타던 스키를 타다 보니 집에 오니 녹초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특별히 한식을 준비해 주셨다. 오랜만에 밥이랑 맛있는 불고기에 상추 쌈...최근에 한국서 공수한 김치..특이한 것은 애들이 한국 음식들을 잘 먹는 다는 것이다. 예로 말린 오징어 구이, 된장국 같은것들은 외국 사람들이 질색하는 것들인데 애들은 잘 먹었다. 아저씨는 안먹었지만서도...ㅡㅡ;;

다음날은 집 앞 호수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했다. 아저씨가 고무 바퀴 달린 차로 호수위에 트랙을 만들어 주셔서 오전내내 그 길을 따라 달렸다. 모처럼 해가 나와서 땀에 젖기는 했는데 운동은 꽤나 되었다. 저녁 무렵에 귀가하기 전까지 탁구치고 당구치고 다트하고 엑스박스로 게임하고...놀이가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 왔다. 집앞 호수에서 겨울 낚시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는데...여름에는 바로 옆에 있는 골프장에서 골프도 칠수 있다고 하니 정말 부러웠다. 아주머니께서 집 바로 옆에 시어머니 집을 펜션으로 바꾸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다음에 가족들이랑 오면 공짜로 해주겠다고 약속 하셨느데..ㅎㅎ

스웨덴 와서 가장 즐거웠던 3일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2010년 2월 5일 금요일

출산율

정부에서 출산율이 낮다고 몇가지 당근을 내 놓고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건 한두가지가 아니다.
스웨덴은 인구가 천만이 안된다. 이민자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중동국가의 망명자들  또한 많다.
내가 한주 더 있겠다면 비자 연장 신청하라고 아니면 나가야 된다는 엄격한 이민국이지만 망명자들은 잘 받아들인다. 분명 인도주의적이며 박애주의적인 나라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유럽국 중에 프랑스나 독일에 맞먹는 크기의 국토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인구 밀도는 현저히 낮다. 물론 영토의 대부분이 살기에 척박한 환경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산율 또한 그 다지 높지 않은 것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국가에서 아이들의 의료나 교육을 부담한다고 해도 마구 낳자는 식의 국민 의식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유난히 이곳에는 한국 입양아가 많다. 사회 보장이 잘 되어 있는 탓이기도하고 입양을 통한 아이에 대한 사랑, 양국가 간에 입양 절차나 기관이 잘 구성되어있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곳에 교수 한분도 이번에 한국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첫날 그 대화 때문에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부에서는 애 낳으라고 난리를 치면서 정작 자기 애들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실정이라니...아이러니하면서 위정자들의 일관성없는 정책에 신물이 넘어오기도 하다. 그럼 과연 대한민국은 국민이 부족한가? 그 좁은 땅에 인구가 5천만이 살고 있고 심지어 인구의 반이 서울이라는 조그만 지역에 죄다 몰려 살고 있는데...혹여나 행정 도시라도 옮길까 죽어라 반대하는 강남사시는 분들이 계신데 인구수 부족하다 집값 떨어질라 걱정 되시는지...

인구가 부족해서 산업 일손이 부족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청년 실업은 무엇이며 노년에도 퇴직하지 못하고 이일저일 잡다한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많은 노인들은 무엇인가? 출산율은 줄지 몰라도 사망율 또한 줄고 있다는걸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목표로하는 장기적인 국가 발전 계획에 국민들도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든다.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소모되어야 하는 현실에 동감하고 있냐는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자살하고 좌절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최소한 우리 아이는 그 범주에 들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닐까? 벌써 우리 주변에는 독립을 했어야 할 나이인 서른 중반이 훨씬 넘어서도 부모 밑에서 의지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회에서 경쟁하여 살아남기에는 너무 마음이 약하거나 몸이 약한 친구들이 상처를 받으면서 낙오되고 있다. 최소한 아이를 가질 때 내 아이가 이 곳에서 자라면서 행복할 수 있을 지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정부는 다음세대에 이 사회를 끌어가야 할 새로운 젊은 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소모품이 필요한 건 아닌가? 내 아이는 태어나면서 벌써 저 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나가는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만인 약한 마음에 경쟁자에게 등을 보이거나 경쟁에서 밀려나면 패자로 이 사회를 살아가기가 힘들게 될것이다. 설령 마라톤의 중간 대열에 끼어서 어떻게든 밀려 뛰게 되더라도 그가 이 경쟁에서는 이길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할 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날 아이에게 은스푼을 물려 줄 수 없다면 최소한 한국에서 애를 갖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어쩌면 아이를 가진다는 기쁨에 행하는 부모의 이기적인 행동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원정 출산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문제는 결국 있는 집 자식들은 모두 이중국적이라는 것이지만...남자는 군대 갔다 온다는 가정하에...물론 어떻게든 면제를 시키겠지만..삼성가는 군대 갔다 왔나??

2010년 2월 4일 목요일

도서관

리뷰할 페이퍼 마감이 다가와서 오후 내내 도서관에서 있었다.
오피스에서 하면 자꾸 컴터를 만지게 되어서 제대로 읽히지 않아서 도서관에서 하면 나을 듯해보였다.
날씨가 흐린데도 도서관은 환하다.

물론 실내등을 켜긴 하지만 자연 채광을 위해서 지붕을 유리로 해 놓은 덕에 흐린 날씨에도
실내가 매우 밝다. 아마도 수년에 걸친 경험을 토대로 건물 설계를 했기 때문일 테지만..
그리고 실내 인테리어도 어느 곳 하나 햇빛을 막는 곳이 없다.
따라서 큰 음악관 홀 처럼 중앙에는 여백을 두고 가장 자리 중심으로 책상을 배치 하였으며,
층계 중간에 벽을 두지 않아 전체가 마치 하나의 방처럼 만들어 놓은 형상이다. 그 위로는 커다란 창이 지붕으로 나 있어서 햇빛이 잘 들게 했다.
그러면 소음이 퍼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를 막기 위해서 책장을 적절히 배치 해 놓고 바닥은 소리가 울리지 않는 나무 재질로 만들어서 아늑하게 보이도록 했다.

대부분 개별 열람으로 되어 있어서 조용한 편이고 일층은 특이하게 카페 모양으로 만들어 놓아 커다란 창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을 할수도 있다. 물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은 안되겠지..

여하튼 도서관도 나름 멋드러지게 지어 놓은 듯 하다. 미국 학교는 뭐랄까 옛날 건축 양식으로 엄하게 유럽식으로 지어 놨는데 어둡기만 하고 당췌 왜 그렇게 지어 놓았는지 이해조차 안된다. 물론 오래된 건물이긴 하지만서도...


2010년 2월 3일 수요일

기숙사

어제 부터 학교 기숙사에서 잠을 잤다.
밤에 마지막 버스 잡으러 나갔다가 눈 앞에서 놓쳐 이십여분을 걸어 갔다...간밤에 눈 엄청 왔는데
덕분에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을 홀로 밟아 보아서.... 기분이 안좋았다...ㅡㅡ;;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한번 길을 헤매서 좀 돌아 갔다. 이런...모를때는 역시 차도 따라 가는게 상책인데

방에 들어가 보니..허거덩...
짐은 치워놨는데 베개가 없다...이런 쉣...ㅡㅡ;;
교수가 짐 실어다 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들고 갈것도 없다고 사양했는데...ㅠㅠ
이불은 둘째 치고 베개라도 들고 가야 겠다. 덕분에 바지랑 상의를 접어 베고 잤다. 생각 외로 그렇게 시끄럽진 않았다. 내방이 키친 옆에 있어서 창으로 사람들이 볼수 있다는 약간의 신경쓰임 빼고는 양호 했다.
최소한 유리 조각을 밟기 전에는...

리우 자식이 이사를 어떻게 했는지 컵을 깨먹은 모양인데 제대로 뒷정리를 안한 듯 했다.
먼가 따금거려서 봤더니 발 바닥에 유리조각이 가득이었다. 부랴부랴 목욕 타월로 바닥을 쓸어서 한곳으로 몰았더니 유리 파편들이 장난아니게 많았다.. 일본 애들이면 이렇게 안하고 갔을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중국애들은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두께가 상당히 심려 스러웠는데 간밤에 춥진 않았다. 난방은 잘되는 듯 했다. 한 30만원 좀 넘는 가격에 요즘 환율로는 40정도 되려나...여튼 유틸 포함 이 정도 시설은 훌륭하다. 코업레지던스 생각하면 무척 싼 가격이다. 벽에 붙은 가구들을 봐서는 개인이 산것은 아닌것 같고 미국처럼 조명 따로 살 일도 없으니 괜찮은 딜이다. 물론 그렇게 새 건물은 아니지만 노후되진 않았고 시설물들은 깨끗한 편이었다. 나야 키친을 안쓰니 그다지 흥미는 없지만 안에 아침을 먹는 애들도 보였다.

역시나 제일 좋은 것은 출근 하는 것이다. 가까우니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없고 학교에 보통때 보다 한시간 정도 빨리 온것 같다. 오늘은 눈보라가 와서 역시나 밖에 돌아다니기 싫은 날인데 학교가 가까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큰 잇점이다. 주말즈음에 와인이나 좀 사다가 애들이랑 집들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ㅎㅎ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초대

어제 저녁에 고민고민하다가 좀 불편해도 초대에 응하는게 소셜을 위해서 낫겠다 싶어 큰 맘 먹고 오피스를 나섰다. 막상 나오니까 추워서 급 후회 하긴 했지만...하필이면 아무생각없이 올른 버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몇걸음 덜 걸어보려는 심산으로 오히려 더 많이 걷게 되었다.

밤은 어둡고 날씨는 추운데 이곳 동네는 표지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서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수가 없다. 주소를 보고 구글에서 본 것이 다인지라 실제 낮은 곳에서 둘러보면 지형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한 한시간 가량을 헤매다가 숲에서 미아가 되는 줄 알았다. 약간 공포 스럽기까지 한 이 곳 동네 특성상 밤에 혼자 다는것이 안전하다고는 하나 무섭긴 어쩔 수 없다. 결국 포기 하려다 한곳 만 더 가보자는 심산으로 한쪽 도로에서 벗어난 마을을 들렀는데 문제는 이곳이 안드레아스가 써준 자기 동네가 맞냐는 거다..젠장..

일단 번지에 맞는 집만 찾아서 확인만 하고 아니면 그냥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숫자가 잘 안보이니 이집이 맞나? 하고 몇번을 아래 위로 걸어가면서 집에 쓰인 숫자를 확인하는데 그걸 안에서 봤는지 교수가 밖에 나와서 손을 흔들어 줬다. 젠장...오늘은 여기서 지내야할 운인가보네...

집은 아늑하고 모던한게 역시나 후줄근한 아파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는데 안갔으면 좀 미안할 뻔 한게 손님 온다고 사모께서 준비를 좀 하신거다. 안갔으면 욕 좀 먹었을듯...문제는 안먹던 기름진? 파스트랑 치즈 요리는 결국 나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내 생각엔 추운데 있다가 들어가서 먹은것도 그렇고 위장이 약한데 와인까지 넣어댔으니 위가 놀란만 한게지... 와인 한병을 비울때까지 잡다한 얘기...어쩌다 보니 각국의 의료 실태에 대한 디스커션이 주였다.

둘다 애들때문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 인지라 나도 열시반에 침대에 들긴 했는데 속이 안좋아서 계속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했더니 ...아침에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 잠을 제대로 못잔데다 숙취까지 있어서 정ㅁ라 쉣이었다. 아침 컨퍼런스 콜이 있는데 일어나보니 11시다. 이런 쉐쉣...ㅡㅡ;;
샤워하고 집 단속하고 나왔더니 멜 통에 아침 씨씨 내용이 잔득 들어와 있다 .낼 다시하자고...ㅡㅡ;;
사무실 오자마자 소화제를 찾아 먹었다. 새벽 무렵에는 심지어 넘어 올려는 것이었다. 온갖 지압을 동원해서 막긴했는데 근래 체해서 올라올 정도 느낌은 몇년만에 첨이다.

물론 몸상태는 영 아니지만 그래도 간밤에 소셜은 잘 한것 같다. 많이 친해 졌고 다음 여름이나 봄에 캘리로 온다고 한다. 나 있을때 오겠다고 하니 그래도 많이 친해 진 것 아닌가? 여하튼 기분은 좋다...몸은 아니지만...ㅠㅠ